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병자년의 호란(胡亂)과 정축년의 하성(下城) | 병자호란 용어의 이해, 병자호란의 역사적 의미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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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존 시각: 정치·외교·군사의 대 실패 | 정치 분야의 대 실패, 외교 분야의 대 실패, 군사 분야의 대 실패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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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로운 시각: 조선을 이해하는 창(窓) | 당대적 맥락에서 접근한 병자호란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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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. | ![]() |
중화(中華)와 이적(夷狄)의 구분 | 전근대 중국의 화이관(華夷觀), 중국 주변 민족의 소중화(小中華) 의식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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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하(天下)와 천자(天子) | 천명(天命) 사상과 천하 통치의 이념, 성인천자(聖人天子)의 임무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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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국 중심의 위계적 국제 질서 | 사대(事大)와 자소(字小), 책봉(冊封)과 조공(朝貢)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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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. | ![]() |
중립 외교의 추진과 한계 | 광해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, 중립 외교의 성과와 한계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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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립 외교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 | 광해군대 외교 현안, 군신(君臣) 간의 갈등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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광해군의 정치적 고립 | 중립 외교의 추진과 광해군의 정치적 고립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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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. | ![]() |
인조반정의 주도 세력 | 인조반정의 경과와 주도 세력, 반정(反正)의 의미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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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조반정의 3대 명분 | 폐모살제(廢母殺弟), ‘배명친후금(背明親後金)’ 외교, 내정(內政)의 문란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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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조정권의 ‘친명배금(親明排金)’ 외교 | 인조반정에 대한 명의 대응, ‘친명배금’ 외교의 실상과 한계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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5. | ![]() |
정묘호란의 배경과 전개 | 후금의 침략 동기, 전황과 조선군의 대응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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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화론 대 척화론 | 후금의 강화(講和) 제의 배경, 주화·척화론의 주도 세력과 내용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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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(禮)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 | 강화 협상의 주요 안건과 쟁점, 정묘맹약(丁卯盟約) 체결의 의미와 영향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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6. | ![]() |
병력의 확보와 육성 | 군사적 실패의 구조적 원인, 호패법 추진 시도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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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·명 군사 연합의 실상 | 모문룡의 동강진(東江鎭) 개설, 인조정권의 대명(對明) 인식과 대응, 명나라의 사정과 입장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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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성(守城) 위주의 방어책 | 광해군, 인조대의 대후금(대청) 방어 전술, 인조대 수성책(守城策)의 추진과 한계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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7. | ![]() |
대청 체제의 수립과 선포 | 홍타이지의 중앙 집권 강화, 홍타이지의 황제 즉위 과정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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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에 온 후금·몽골 사신 | 후금·몽골 사신단의 한양 입성, 병자년(인조 14) 2월 주화·척화 논쟁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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홍타이지의 황제 즉위와 조선 사신의 대응 | 심양에 간 조선 사신, 병자년(인조 14) 가을 주화·척화 논쟁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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8. | ![]() |
청 태종 홍타이지의 친정(親征)과 대 병력의 동원 | 홍타이지 참전의 동기와 목적, 청군의 동원 병력과 의미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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홍이포(紅夷砲)와 수군(水軍)의 확보 | 홍이포 확보와 청군의 공성(攻城) 전술, 한인(漢人) 무장의 귀순과 수군 확보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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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군 선발대의 직공(直攻) | 청군 선발대의 기동과 작전 목표, 수성책과 조선의 딜레마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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9. | ![]() |
농성 전반기: 병자년 12월 14일∼병자년 12월 30일 | 농성의 추이와 조선의 대응, 주화·척화 논쟁의 실상과 성격, 강화(講和) 협상의 주요 안건과 쟁점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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농성 중반기: 정축년 1월 1일∼정축년 1월 15일 | 농성의 추이와 조선의 대응, 주화·척화 논쟁의 실상과 성격, 강화(講和) 협상의 주요 안건과 쟁점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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농성 후반기: 정축년 1월 16일∼정축년 1월 30일 | 농성의 추이와 조선의 대응, 주화·척화 논쟁의 실상과 성격, 강화(講和) 협상의 주요 안건과 쟁점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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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0. | ![]() |
김경징 패전 책임론 | 김경징 패전 책임론의 문제점, 『병자록』 관련 기록의 비판적 독해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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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화도 함락의 원인 재 검토 | 강화도 방어 실패의 구조적 원인, 청군의 강화도 공략 전술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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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전 이후 김경징 처벌의 정치적·문화적 맥락 | 종전 이후 패전 책임론의 격돌, 김경징의 도주와 노모(老母)의 자결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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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1. | ![]() |
출성 회피의 내면 | 출성의 절차와 의미, 출성 회피의 내면 분석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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삼전도 항례와 조·청 양국 위상의 변동 | 삼전도 항례의 거행, 삼전도 항례의 상징적 의미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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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축화약(丁丑和約)의 이행 조건 | 정축화약의 이행 조건 분석, 조선의 반응과 대처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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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2. | ![]() |
최명길 주화론의 단계적 변화 | 최명길의 출신과 배경, 최명길 주화론의 시기별 내용과 변화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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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명길의 대명의리 실천 | 최명길의 징병 반대 노력, 최명길의 밀통 시도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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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화·척화의 이분법 탈피 | 척화론에 대한 최명길의 인식과 태도, 대명의리 준수의 기준과 최명길의 입장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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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3. | ![]() |
척화론과 대명의리 | 척화론과 예(禮)의 실천, 척화론과 대명의리의 성격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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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시대의 중화(中華)와 중국(中國) | 고려말∼조선초 중화(中華) 보편의 세계관 형성, 율곡 이이의 중화와 중국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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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 개의 대명(對明) 인식과 병자호란 | 척화론과 두 개의 대명 인식, 보편문명으로서 중화(中華)의 성격 | ![]() |